
2021년 정확히는 <스윗홈>을 기점으로 넷플릭스코리아가 내놓는 드라마 시리즈는 대부분 각각의 색깔이 짙은 장르물로 견고하지는 않지만 명확한 세계관 속에 세밀하지는 않지만 매듭은 확실한 서사를 녹여내는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까지 넷플릭스코리아가 선보인 드라마 시리즈물은 총 16개이며 2021년 이후 공개된 드라마만 8개다. 이 모든 것이 <오징어 게임>의 성과라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분명 과언이 아니지만, 그 드라마의 파급력이 넷플릭스 코리아 측에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시킨 것은 사실이다. <오징어게임>은 한류 기세를 이어온 기생충과 방탄소년단, 윤여정에 이어 K-콘텐츠 열풍을 하나의 범세계 문화적 흐름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국위선양에 나라 전반이 떠오르는 단일민족인 자국의 문화 내에서도 공고히 행사됐다. 세계와 한국은 <오징어 게임> 이후부터 새롭게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물에 구체적 요소를 주축으로 한 추측 또는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 요소의 내용은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폭력성과 적나라함이다.

아마도 그 두 요소의 시작점은 2020년 겨울에 개봉한 <스윗홈>이 2021년 넷플릭스 월드 콘텐츠 3위까지 올랐을 때일 것이다. 넷플릭스코리아의 포문을 연 <킹덤> 또한 수위가 매우 높은 시체 훼손과 잔혹함을 다루는데, <킹덤>이 이룬 성과는 어떤 결과를 가진 한국 콘텐츠의 부흥이 아니라 영화 <부산행>과 함께 주도한 K-좀비의 유행이었다. <스윗홈>을 기점으로 한국 장르물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오징어 게임>의 성공이 한국 콘텐츠의 세계관 도입을 환영하도록 했다. 이전 대한민국 콘텐츠는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 타이츠 장르가 주를 이뤘고 소비자가 창작물을 소비할 때 감독이나 제작진이 아닌 배우에게 의존하게 되는 스타 페르소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선명한 세계관 축조가 필수불가결한 장르물을 제작할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해외 기업이 한국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면서 모든 판도를 바꿨다. 이제 소비자들은 작품 출연진을 일일이 살피지 않고 빨간색의 거대한 ‘N’ 마크를 보고 영상을 재생한다.

<스위트홈>, <오징어게임>, <DP>,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에 이은 시리즈물의 주요 주제는 ‘재난 속의 인간군상’이다. 각 시리즈의 주인공을 위협하는 좀비, 크리처, (비교적 우위의) 강자들은 서사 속 메인빌런이나 장애물의 위치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초자연적 재난처럼 그려진다. 좀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크리처는 제거하는 법조차 몰라 카르텔 자체를 지배하는 절대 강자에게는 대항할 수조차 없다. 빌런은 악마성을 제거하고 장애물은 치우거나 넘으면 되지만 재난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기 때문에 각 시리즈 모두 사건의 해결 없이 이야기를 종결시킨다. 물론 제작 확정을 받지 못한 다음 시즌을 약속하기 위한 제작자들의 의도 역시 담겨 있겠지만 이들이 차용한 재난이라는 소재에는 예고라는 개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재난은 운명적이고 개연성이라는 명목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하든 이야기의 마지막에 찍는 방점에 무게를 실어줄 서사적 책임감이 없다.

또 그 시리즈가 설정해 놓은 재난적 세계관에는 삶이 아닌 생존만이 남아 있다. 동시에 살아갈 수 없는 세계관 속에 인물을 가두고 인간의 속된 본성인 이기심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남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어야 하는 규칙으로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의 야만성을 주목시킨다. 그렇게 인간의 악마성은 출현하는 형태가 아니라 착즙돼 인출된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사항 위에서 ‘어떻게’를 고민하고 딜레마를 가진 인물을 주인공을 위협하는 또 다른 악자로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재난은 결국 배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야기의 사건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각 회마다 장애물이 필요하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시리즈물은 모두 결정에 있어 ‘선’을 생각하는 인물을 빌런 자리에 앉혔다. 윤리적 고찰은 우유부단하고 어리석은 위선으로 전락한다. 그들을 동료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이상주의자로 낙인찍는다. 소비자가 철학적 사고 없이 얄팍하게 서사를 체화하도록 돕는 것은 결국 회차를 끊지 않고 몰아붙이게 하는 몰입도를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도 이를 원한다는 점이다. 이제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다. 리모컨을 찾지 않아도 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켜고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활동시간의 틈을 견뎌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킬링타임용’이라는 수식어구에는 다음 활동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 동안 콘텐츠에는 자신을 할애하지 않고 오로지 시간만 죽이겠다는 의사가 실려 있다. 넷플릭스는 정확히 그 지점을 타깃으로 화려한 ‘불’을 벌인다. 현실세계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해놓고 인간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통각의 기억세포를 접착제로 삼아 소비자의 엉덩이를 바닥에 붙여 놓는다. 무수한 인간이 잔혹하게 죽어가는 시리즈가 끝나고 유행한 것은 달고나와 저지대, 헤어스타일, 성대모사뿐이었다. 접착제는 한번 떨어진 뒤에는 달라붙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쉽고 가벼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