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콤 1954 출격 첫 한일전과 월드컵, 결과는 패배 과정은 승리 배우 한정수 아버지가 축구선수?

2022년 1월 13일 코콤 1954 출격 –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첫 한일전이 열린 그날의 이야기 속으로~~

1954년 1월 전쟁이 끝난 지 6개월도 안 된 날 홍덕영 씨는 초라한 여관방에 도착했습니다.

이어서 20명의 장군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군인 스파이를 잡는 특무부대에서 다양한 부대에서 모인 남자들.

그 일을 위해 각 부대에서 파견된 특수정 요원이래요.

같은 시각 지금의 청와대 경무대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그 일에 강력히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택상 의원은 물러서지 않고 설득했고 결국 대통령도 허락했다는데.

마침내 각하의 출격 명령이 내려졌다.

다만 실패했을 때는 CCC에 목숨을 던져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각서까지 쓰고 출격한 임무는???

축구 한일전 (이 경기가 공식적인 첫 한일전이래요)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 한 경기를 일본에서 치르면 한 경기는 한국에서 치러야 하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절대 일본인을 한국 땅에 들여보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결국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르자고 제안했다.

당시 축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군입대밖에 없던 시절

전쟁 직후 축구를 하기 위해 군인이 된 선수들은 가죽과 나무로 된 축구화를 신고 뛰어야 했습니다. ~

특히 축구화 스탠드를 직접 못으로 박아 사용한 선수들은 축구장의 필수품이 망치였다고 합니다. (´;ω; ))

국가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장비가 매우 열악했던 선수들, 사실 대통령이 한일전을 반대한 이유도 돈이었습니다.

경기를 치르기 위한 비용도 없어 모금운동을 벌였고, 재일동포들이 조금씩 모금을 해서 한일전을 치렀다고 합니다.

대한해협이라고 적힌 곳이 현해탄의 위치

일본으로 떠나는 출국일은 1954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응원하는 국민과 선수들의 마음이 정말 비장했던 것 같아요.

첫 시합 일주일 전인데, 우리 선수들은 축구장이 아니라 농구장에서 연습하고 있었어?

이유는 도쿄에 며칠째 눈과 비가 오고 신발이 하나뿐이어서 젖으면 안되기 때문에 연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땅도 밟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 3월 7일 첫 한일전

악천후로 우리 선수들은 경기 지연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양보하지 않고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첫 한일전은 너무 열악했다고.쌓인 눈이 다 녹아서 축구장은 갯벌이 되어버렸고

축구화는 이미 젖어 있었고 공은 물에 젖어 돌멩이가 된 것이다.

이날 최종 스코어는 5-1로 대한민국의 완승.

열악한 환경 속에서 투혼을 보여준 한국 선수들

일주일 뒤 2차전 결과는 2대 2 무승부로 대한민국은 당당하게 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고 합니다.

선수들은 벌써 월드컵 본선을 위해 스위스로 향했다고 하는데요.항공권을 어떻게 사야 할지도 몰라 선발대 후발대로 갈라지는 해프닝과 지옥 환승 여정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피로를 극복하면서 가는 내내 감독님이 써주신 작전 메모를 뚝딱 외워갔대요.드디어 5박 6일, 비행시간만 64시간이 걸려 도착한 한국 선수들.

첫 번째 우리 상대는 세계 최강 헝가리 악마의 왼발, 최고의 스트라이커 펠렌츠프스카스까지 보유한 팀.

4-0으로 전반전이 끝나고 전반전 이후 우리 선수들은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한다.

이에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고 하는데 당시 선수 교체도 할 수 없는 규정이 있어 골키퍼 홍덕영 씨는 공을 잡으면 경기장 밖으로 차 시간을 벌었다고 합니다. 눈물 눈물

하지만 결국 홍덕영까지 경련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최종 스코어 9-0으로 대패(이는 역대 월드컵 최다골 차로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라고 말했다.

부끄럽고 창피했던 선수들은 경기장을 빠져나왔는데

근데 그들에게 많은 응원이 쏟아졌고 심지어 숙소 앞에는 선물 행렬이 이어졌대요.이게 무슨 말이야?

당시 중계방송을 하던 아나운서는

한국 대표팀은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안 된 나라 선수들이 치열한 투혼을 보이고 있다.

응원 부탁한다. 라고 중계를 해서

헝가리 감독도 경기 후 한국팀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섰다.지치지 않은 사자들이 달리는 것 같았던 우리 선수들의 투지에 감동했다면서요?

이틀 후에 열린 2차전은 터키와의 대결이었어요.1진 선수들의 컨디션 문제로 2진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했는데

경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눈물)

무관심 속에 치러진 경기 결과는 7대 0

(이때 터키전에 중앙 수비수로 뛰었던 한창화 선수의 아들이 바로 배우 한정수 씨래요.~~)

그날부터 월드컵 무대를 밟기까지 32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세계에 6개국밖에 없는 대기록!!!! )

2002년에는 월드컵 개최 & 4강 신화까지.

홍덕용 씨는 2002년 월드컵 유치위원단으로 활동했고 이때 푸스카스와 재회했다고 합니다.

왼쪽 거스커즈 선수, 그는 한국의 월드컵 유치에 힘써줬다고 합니다.푸스카스 땡큐소 마치~~~~~~~~

홍덕영 씨가 자신의 축구화를 수리하는 사진 결과는 패배였지만 과정은 승리한 그날 이야기… 너무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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