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전지판과 안테나 등은 부러져 발사체에 실린 이후 우주에서 전개된다. 사진 왼쪽은 발사 준비 중인 천리안 2B호, 오른쪽은 태양전지판을 펼친 천리안 2B호의 상상도.인공위성은 변신 로봇입니다. 발사체에 웅크린 채 탑승해 우주에 도착하면 단단히 숨겨둔 안테나와 태양전지판을 펼칩니다. ‘변신’의 순간을 두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오랫동안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위성은 마치 병풍을 두르듯 우아하게 날개를 펴기도 합니다. 위성을 위성답게 만드는 전개장치의 비밀을 들어볼까요?
전개에 실패하면?
임무 테스트 중 남쪽 방향 태양전지판이 손상됐다는 신호를 받은 인텔샛19의 상상 역시. <그림 출처=SSL>
세계 최대의 위성 통신 회사 중 하나인 인텔샛(Intelsat)은 2012년 뼈아픈 성명을 발표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해 5월 발사한 인텔샛19가 임무 시작 전 날개 한쪽을 잃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두 태양전지판 중 하나가 전개에 실패한 겁니다. 당시 인텔샛은 52개의 통신위성을 가진 국제 위성방송계의 거물이었는데요. 잇따라 발사를 앞둔 다른 2개 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까스로 임무는 시작했지만 이미 가용 전력의 절반 가까이가 상실됐고 총 수명도 줄어들었습니다. ‘전개’ 여부가 인공위성의 생명줄을 쥐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사례였습니다. 이처럼 임무전력을 책임지는 태양전지판, 지상과의 유일한 소통창구 안테나가 열리지 않으면 수백~수천억의 예산과 노력은 한순간 물거품이 됩니다. 가끔 접어서 싣는 레이더가 열리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사체는 방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접어서 싣지 않으면 전개하는 구성품은 발사 순간에 모두 망가져 버립니다. 태양 전지판과 안테나는 둘 다 본체에 평평하게 고정해 두는데요. 위성이 우주공간에 던져진 뒤 태양전지판을 먼저 펼치고 추력기나 반작용 휠과 같은 자세제어장치로 위성의 자세를 제어하게 됩니다. 이런 전개 시스템을 간단히 힌지(Hinge)라고 부르는데 한국어로 경첩이라는 뜻입니다. 극한 온도 변화로 성능을 유지해야 하고 ‘불량품은 없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세 중력으로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뒤로 젖혀지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는 가장 전통적인 힌지는 ‘메이저’입니다.
테이프 힌지 전개 시스템에는 상기와 같은 금속 메이저가 사용된다. <사진 출처 = pixabay >
국내 최초로 영상레이더(SAR)를 탑재한 아리랑 5호는 마이크로파를 쏘는 레이더 장비(그림에서 본체 앞에 장착된 긴 직사각형 탑재체)도 전개형으로 제작됐다. 지상에서는 양쪽으로 갈라져 본체 옆에 고정되도록 하고 우주에서는 그림 모양으로 길게 합쳐진다. <사진제공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금속줄자로 태양전지판을 넓히다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2호의 전개장치로 사용된 테이프 힌지. 금속 줄자를 마주보게 연결하여 강성을 높였다. <사진제공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줄자 중에서도 평범한 가정이라면 하나씩 두고 쓸만한 금속 줄자를 인공위성 전개장치로 사용합니다. 모양과 성능을 떠올려 보세요. 단면은 U자로 휘어져 있어 길게 뽑아도 곧은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휘어지기도 합니다. 인공위성 본체와 태양전지판을 이걸로 연결할 건데요. 10cm 전후로 짧게 자르고 양 끝에 연결 장치를 부착하여 본체에 구부려 둡니다. 메이저 하나에서는 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2열을 평행하게 마주합니다. 때로는 각각 2중으로 겹치기도 합니다. 체결 부품은 사방에서 태양전지판을 꼭 잡고 우주로 가면 풀어줍니다. 잠시 구부러지긴 했지만 구속이 풀림과 동시에 ‘찰칵’ 소리를 내며 날개가 펼쳐지는 장면이 그려지나요?
보다 정확한 용어로는 이러한 전개장치를 ‘테이프 힌지’라고 부릅니다. 동력도 필요 없고 금속 재질이라 튼튼한 데다 인공위성이 선호하는 매우 간결한 방식입니다. 특히 중량이 작은 인공위성으로 가성비가 높은 전개 시스템입니다. 끊어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이상은 틀림없이 펼쳐지고, 넓은 태양전지판에서도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축 처질 염려가 없습니다. 인공위성에 전개식 태양전지판을 사용한 이후 가장 전통적으로 사용돼 온 방식이라 신뢰도가 높습니다. 너무 쉽냐고? 제작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 개발진이 테이프 힌지를 개발할 당시 전개용으로 딱 맞는 줄자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처음엔 세계적으로도 시장점유율이 높은 국내산 메이저 업체의 문을 두드렸어요. 문제는 국내산 메이저가 탄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이저로서의 성능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테이프 힌지에서는 좀 더 부드러워야 했습니다. 결국은 부품을 제작하는 업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테이프 힌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작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후속 위성에서는 전 세계 메이저를 찾아 개발진이 원하는 적당한 강도와 탄력성을 가진 금속 줄자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쌍꺼풀을 덧붙였을 때도 시험에서 문제가 생겼는데요. 강성을 높인 결과 메이저가 고정되는 양 끝에 변형이 일어난 것입니다. 국내 개발진은 “인공위성은 매우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해 다른 설계 수정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림 위는 아리랑 1·2호, 아래는 3·3A호. 윙 설치 방법에 차이가 뚜렷하다. 아리랑 33A호는 고기동위성으로 개발, 태양전지판을 개별적으로 배치하고 스프링 힌지와 스트럿(윙을 지지하는 금속봉)을 사용했다.아리랑 1, 2호까지는 테이프 힌지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이후 우리 위성은 나날이 진화했는데요. 탑재체는 점점 무거워지고 필요 전력량도 늘어납니다. 특히 아리랑 3호, 3A호는 기동부터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궤도선회 중에 휙 훑어보고 찍은 촬영 방식이 아니라 부산을 찍고 빠르게 자세를 바꿔 대전을 찍고 동해를 찍을 수 있게 한 겁니다. 이것을 고기동위성이라고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미션이 카메라의 흔들림을 잡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속하게 진동을 억제하느냐가 임무의 질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면적이 큰 태양전지판을 효과적으로 고정시켜 줄 새로운 힌지 타입이 필요했습니다.
고기동 위성인 아리랑 3호, 3A호를 보면 윙 부착 방식부터 다릅니다. 병풍처럼 접혀 있어 길게 펼치는 것이 아니라 단일 패널을 따로 설치했습니다. 고기동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이에 더해 ‘스프링 힌지’와 ‘스트럿’으로 전개력·고정력을 높였습니다. 스프링 힌지는 인장 스프링을 사용하여 전개합니다. 테이프 스프링 힌지와 같이 인장 스프링을 접은 후 전개하는 방식입니다.
스프링 힌지 시스템에 사용되는 인장스프링(사진 왼쪽)과 인장스프링을 이용한 인공위성용 전개장치 <사진출처=spacetech-i.com/generalwirespring.com> 복합재료로 만든 스트럿은 우산살을 떠올려보세요. 태양 전지판이 파도치지 않도록 지지하는 장치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리랑 3호·3A호는 흔들림 없이 선명한 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공위성 반작용 휠의 떨림을 억제하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https://blog.naver.com/karipr/221660819113
스프링 힌지는 비틀림 감기 토션 스프링(Torsion Spring)을 사용하여 전개되기도 합니다. 굽힘 응력(외부의 힘에 의해 생기는 내력)이 생긴 상태에서 구속을 풀면 자연스럽게 퍼집니다. 토션 팬츠의 지름을 조절하여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스프링 힌지 시스템에 쓰이는 토션 스프링(왼쪽)은 쥐 잡는 데도 쓰인다. <사진출처=generalwirespring.com/depositphotos>
토션 스프링을 이용한 인공위성용 전개장치 <사진출처=honeybeerobotics.com> 정지궤도위성은 날개를 ‘깨끗하게’ 펼친다.
동기 힌지 시스템의 전개 과정을 나타내는 그림. 각 패널이 동일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전개된다. <그림출처=인공위성 태양전지판의 힌지메커니즘 및 전개구동에 관한 연구>
펀치총 작동 방식과도 비슷하다. <사진출처=G마켓>
지구와 같은 속도로 돌아가면서 특정 영역만 커버하는 정지궤도 위성은 큰 부팅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수명이 7~10년 이상으로 길고 저궤도 위성보다 중량이 3배 이상이어서 전력 소모가 큽니다. 태양전지판도 두 배 이상 커요. 복수단 접힘 패널을 전개할 때 패널 간 간섭이나 충돌, 전개 지연 등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본체에까지 영향을 주어 파손, 자세 제어 문제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만. 이를 해결할 특별한 구동방식이 필요했어요. 주로 대형 위성에 사용되는 동기식 힌지 시스템의 핵심 기능은 ‘동력’과 ‘전개 동기화’입니다. 스프링 힌지 시스템을 이용하여 태양전지판을 전개하고 전기모터를 이용하여 윙을 펼치는 전개속도를 조절하면서 모든 패널을 동일한 각도로 작동시킵니다. 각 패널의 끝을 연결하는 동기 케이블을 부착하고 이를 본체의 모터와 연결하여 전개 속도를 조절하면서 태양전지 패널의 전개가 동일하도록 동기화합니다. 다른 힌지 시스템보다 설계는 복잡하지만 그만큼 정교하게 임무 시작이 가능합니다.
특히 천리안 같은 정지궤도 위성은 한 번에 목표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천이궤도를 지나갑니다. 이때 시스템 점검에 필요한 전력을 얻기 위해 가장 바깥쪽 패널만 90°로 먼저 펼칩니다. 나머지 패널은 정지궤도에 갔을 때 동일하게 90°로 펼친 후 전개동기장치에서 동시에 똑바로 펼치는 고난도 전개쇼를 진행합니다. 앞서 힌지들이 몇 초 안에 전개를 완료하는 반면 동기식 힌지 시스템은 1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테스트 장면을 지켜본 개발진의 표현에 따르면 날개를 펼치는 과정이 ‘매우 예쁘다’고 하네요.
기획제작 : 항공우주 Editor 이종원 내용감수 : 위성기술연구부 김경원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