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가 나오려면 가수가 튀거나 노래가 튀어야 해요. 둘 다 눈에 띄면 딱이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둘 중 하나는 튀어야 합니다. 가끔 시류라고 할까 유행이라고 할까 운이 좋아서 그냥 그런 수준의 가수이거나 노래인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위의 공식은 시대를 불문하고 통용되는 철칙입니다.
이정희의 ‘그대여’는 노래가 튀어 나온 노래입니다. 그런데 ‘시대 한정’의 이정희도 당대에는 미녀 축에 들어갔기 때문에 나름 가수들도 눈에 띄는 상황이었어요. 아무튼 ‘그대여’는 나름 가수도 튀고 노래도 튀어 1981년을 강타했습니다. 그리고 이정희는 1981년에 이 ‘그대여’를 들고 무려 ’10대 가수’까지 등극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갑자기 김상준 흉내를 내면서!). 요즘 이정희의 ‘너야’는 거의 들을 수 없어요. 사실 이정희는 라디오에서도 잘 안 들려요. 노래로서 ‘그대여’의 임팩트가 강하지 않았는지 후배 가수에게서 리메이크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래를 칠 줄 알면서 생명력 있는 노래가 명곡이지만 이정희의 ‘그대여’는 명곡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범작 수준의 히트곡입니다. 그리고 이정희라는 이름도 연예 기사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이정희가 일시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출연이 끊긴 이유가 크겠지만 가수로서 이정희는 그렇게 큰 임팩트를 가요계에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대여’는 노래 자체가 어느 정도 히트성이 있어서 일단 뜬 것이고, 당대에 돋보이는 미녀 가수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이정희라는 당시에는 나름대로 먹어준 가수가 불렀기 때문에 더 들뜬 것입니다. 1980년대와 1970년대를 한꺼번에 다루는데,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1980년대가 본격적으로 TV 시대, 즉 오디오 가수가 본격적으로 양산되는 시대라는 점입니다.
이은하, 임희숙, 김상월 등 미모가 뛰어나지 않은 여가수들도 1970년대 맹활약이 가능했던 것은 라디오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그들이 요즘 걸그룹 멤버였다면(사실 외모가 절대적으로 중시되는 요즘이라면 걸그룹 멤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성공할지는 회의적입니다. 외모에 따라 같은 걸그룹 멤버의 인기가 천지 차이인 것이 요즘 걸그룹의 차가운 현주소입니다.
‘그대여’ 자체가 무난한 수준의 곡이고 이정희 역시 윤신혜나 정수라처럼 인상적인 가창력이 아니라 그냥 무난한 수준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시대를 보정하니 당대에는 눈에 띄는 미녀 가수였기 때문에 준척 수준의 곡으로 기대 이상으로 히트한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운이 크게 일하는데 이정희도 그런 경우입니다. 10대 가수까지 한 이정희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가요사에서 이정희의 업적과 위상을 고려하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정희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라도 빛의 속도로 잊혀지는 것이 어쩌면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의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가수가 조용필이나 나훈아 같은 기린아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시적인 히트를 쳐서 후속 히트곡을 내지 못하고 가수는 방황하고 때로는 마약과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해서 점차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대다수 가수의 숙명입니다. 이정희도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입니다. 이정희에게 각별히 천박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정희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인기에 비해 너무 빨리 인기가 떨어지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입니다.